Hai-Kyung Suh Piano Recital
연 모
피아니스트 서혜경
이야기가 있는 서혜경 리사이틀 · 상세판
60년의 음악을 지나, 새로운 문을 여는
2026 카네기홀 리사이틀
"평화를 찾지도 못하나 싸울 무기도 없어라.
두려워하면서 갈구하고, 불타오르면서 얼음이 되는구나."
이 리사이틀의 프로그램은 하나의 서사로 설계되었습니다. 사랑의 천만 가지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출발했고, 네 개의 장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사랑은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가졌는가.' 리사이틀의 제목 'In Love, 연모'가 그 질문의 이름입니다. 연모는 그저 사랑이 아니라, 오래 마음에 품고 그리워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만드는 장치가 브람스와 리스트입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거의 대조되다시피 다른 스타일과 학파에 속했던 두 작곡가가, 같은 질문에 전혀 다른 언어로 답합니다. 사랑의 얼굴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프로그램의 구조 자체가 증명하는 셈입니다.
우리의 질문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페트라르카의 시입니다. 사랑은 모순되고 상반되어 보이기까지 하는 모든 것을 담아내고 품는다는 것. 우리는 불타면서 얼어붙고, 평화를 찾지 못하면서도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오늘의 모든 곡은 다른 곡이 말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색을 말하기에 선택되었습니다. 어느 한 곡을 빼면, 이야기는 색 하나를 잃습니다. 사랑의 그라데이션을 음색의 그라데이션으로 옮깁니다.
10월 3일 카네기홀 잰켈홀 리사이틀은 서혜경이 60년의 음악을 지나 새로운 문을 여는 무대입니다. 프로그램의 한가운데에는 서혜경이 직접 위촉한 류재준의 신작 왈츠가 놓입니다. 연주자가 새 작품을 위촉한다는 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의 무대와 이름을 내놓는 일입니다. 이 곡은 서혜경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무대의 이야기는 두 겹입니다. 겉으로는 사랑의 천만 가지 모습을 따라가는 여정이지만, 그 아래에는 반세기가 넘도록 무대를 지켜온 연주자와 피아노의 사랑 이야기가 흐릅니다. 잃어버리고, 말하지 못하고, 새로 태어나고, 시가 되는 사랑. 그 네 개의 장은 60년이 넘도록 피아노를 연모해 온 한 연주자의 자서전이기도 합니다.
무대는 가장 조용한 선언으로 열립니다. 음악으로 죽음을 이겼으나 단 한 번의 눈길로 사랑을 다시 잃은 오르페우스. 스감바티의 편곡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슬픔과 아름다움을 하나의 단순한 선율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실은 사랑의 한 모습이라는 것, 이것이 이야기의 전제입니다.
1762년 초연된 이 오페라에서, 오르페우스가 저승의 무시무시한 복수의 여신들을 노래로 잠재우고 엘리시움, 곧 축복받은 영혼들이 평화롭게 머무는 저승 속의 낙원에 이르렀을 때 흐르는 플루트 선율이 바로 이 멜로디입니다. 신들도 그의 노래에 감동해 아내를 돌려보내 주기로 하지만, 조건은 하나. 지상에 다다를 때까지 뒤돌아보지 말 것. 오르페우스는 아내의 목소리를 견디지 못해 돌아보고, 에우리디체는 다시 사라집니다.
리스트의 제자였던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조반니 스감바티가 피아노로 옮긴 뒤, 수많은 거장들이 앙코르로 아껴온 곡이기도 합니다.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을 40년 동안 존경하며 사랑했고, 그것을 말로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음악을 헌정했습니다. 절제, 그리움, 그리고 불꽃. 말해지지 않은 사랑의 색들이 1부를 채웁니다.
1879년 여름에 쓰인 두 개의 랩소디(Op. 79)는 브람스가 아끼던 제자이자 친구 엘리자베트 폰 헤어초겐베르크에게 헌정되었습니다. 1번 b단조는 폭풍처럼 몰아치다 중간에 문득 자장가 같은 선율이 떠오르고, 2번 g단조는 어둡게 타오르는 발라드입니다. 젊은 날의 브람스가 엘리자베트를 잠시 가르치다 다른 스승에게 보냈는데, 그녀의 매력에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겉은 단정하지만 속은 뜨거운, 브람스라는 사람을 닮은 음악. 클라라와는 또 다른, 절제 속에 담아둔 마음의 기록입니다.
1893년, 예순의 브람스가 일흔셋의 클라라에게 보낸 마지막 음악 편지들 가운데 하나가 여섯 개의 소품 Op. 118입니다. 스무 살에 슈만 부부를 만난 뒤 40년, 끝내 부부가 되지 않은 두 사람 사이의 말하지 못한 모든 것이 이 곡들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피아노 문헌에서 가장 다정한 고백으로 꼽히는 A장조 인터메초와, 당당한 기세와 부드러운 중간부가 대비되는 g단조 발라드를 연주합니다.
1부를 닫는 파가니니 변주곡의 원제는 '피아노를 위한 연습곡'입니다. 클라라는 이 곡을 '마녀의 변주곡'이라 불렀습니다. 리스트의 파가니니 연습곡과 혼동하기 쉽지만, 오늘 연주되는 것은 브람스의 작품 35, 피아노 변주곡 중에서도 어렵기로 유명한 곡입니다. 바이올린의 악마라 불린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 주제를 받아, 격정을 이 악기가 아는 가장 험준한 기교로 단련했습니다. 인터메초에서 클라라를 향해 그토록 다정했던 바로 그 마음이, 이번에는 기교라는 갑옷을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프로그램의 한가운데, 새로운 목소리가 있습니다. 서혜경의 위촉으로 류재준이 로맨틱 피아니스트 서혜경의 스타일에 맞추어 현대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왈츠를 썼고, 10월 3일 카네기홀 잰켈홀에서 세계 초연됩니다. 이 장에서 사랑은 아직 태어나는 중인 무엇입니다.
류재준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를 사사한 한국의 대표 작곡가입니다. 이 곡은 일반적인 위촉과 다릅니다. 한 연주자를 위해, 그 연주자의 음악적 언어에 맞추어 쓰인 곡이기 때문입니다. 옛 대가들의 악보만으로 무대를 채울 수 있었을 연주자가 동시대 작곡가에게 새 작품을 청했고, 그 첫 소리가 이 밤에 울립니다. 홀에 계신 모든 분이 아직 세상 누구도 듣지 못한 곡의 첫 청중이 됩니다. 연모의 이야기 안에서 이 곡이 '새로 태어나는 사랑'인 이유입니다.
리스트는 이야기에 제목과 결말을 줍니다. 초절기교 연습곡은 폭풍이고, 페트라르카 소네트는 서두의 바로 그 시가 소리가 된 것이며, 스페인 광시곡은 어두운 의식에서 시작해 축제의 빛으로 끝납니다. 오르페우스의 상실로 시작한 여정이 축복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초절기교 연습곡 10번에 리스트 자신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지만, 훗날 부조니가 '열정(Appassionata)'이라는 별칭을 제안했을 만큼 격렬한 곡입니다. 그리고 그 부조니의 이름을 딴 국제 콩쿠르에서 1980년 동양인 최초로 최고상을 받은 이가 바로 오늘의 연주자, 서혜경입니다.
페트라르카 소네트 104번은 '순례의 해 2년: 이탈리아'에 실린 곡으로, 시인이 평생 연모한 여인 라우라를 향한 사랑의 모순이 피아노의 노래가 됩니다. 이 리사이틀의 제목 'In Love, 연모'가 바로 이 시에서 나왔습니다.
피날레인 스페인 광시곡은 오래된 변주 주제 '라 폴리아'의 어두운 의식에서 시작해 축제 춤곡 '호타 아라고네사'의 눈부신 빛으로 끝납니다. 상실에서 축복으로. 사랑은 살아남았고, 변모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서혜경은 1980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동양인 최초로 최고상을 수상하며 한국 피아니스트의 국제 무대 진출의 길을 처음 연 1세대 선구자입니다. 한국인의 국제 무대 진출의 포문을 연 연주자, 지금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걸어가는 그 길을 처음 연 사람입니다. 부조니에 이어 뮌헨 ARD 콩쿠르에서도 입상했고, 한국 정부 문화훈장을 최연소로 수훈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협주곡 전곡을 도이치 그라모폰 레이블로 녹음해 '라흐마니노프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며, 2026년 9월 19일 서울시향과 얍 반 츠베던의 지휘로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광시곡을 협연합니다. 그리고 2주 뒤인 10월 3일, 카네기홀 잰켈홀에서 이 리사이틀로 뉴욕 청중과 만납니다.
두 사람이 하나의 논쟁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브람스와 리스트는 19세기 중반의 같은 공기를 마셨고, 거의 모든 것에서 의견이 달랐습니다. 리스트는 바이마르에서 신독일악파를 이끌며 형식을 시로 녹였고, 브람스는 고전의 선을 지켰으며 1860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 등과 함께 신독일악파의 이른바 '미래 음악'을 비판하는 공개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낭만주의자들의 전쟁'은 한 세대의 음악계를 갈라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의 반대편에 선 두 사람 모두,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해 같은 악기 앞에 앉았습니다. 나란히 놓았을 때 두 사람은 어떤 한 명의 작곡가보다 강력하게 이 무대의 명제를 증명합니다. 사랑에는 단 하나의 언어가 없다는 것. 같은 세기가 브람스의 엄격한 형식 안에 숨은 고백과 리스트의 피아노 시편 속에서 타오르는 고백을 함께 낳았습니다. 하나의 프로그램, 대립하는 두 언어, 하나의 주제.
"브람스는 형식 안에 사랑을 숨겼고,
리스트는 사랑을 위해 형식을 태웠다.
그 사이에, 사랑이 그렇듯, 천만 가지 색이 있다."
평화를 찾지도 못하나 싸울 무기도 없어라.
두려워하면서 갈구하고, 불타오르면서 얼음이 되는구나.
하늘 위로 날아 오르다가도, 땅에 누워만 있으며,
아무것도 붙잡지 못하지만, 온 세상을 품에 안네.
그이는 나를 가두고, 문을 열지도 닫지도 않으며,
제 것으로 삼지도, 놓아 주지도 않네.
사랑은 나를 죽이지도, 사슬을 끊어 주지도 않고,
살기를 바라지도, 고통에서 꺼내 주지도 않네.
눈 없이 보고, 혀 없이 절규하며,
스러지기를 갈망하지만, 여전히 구원을 간청합니다.
나 자신을 증오하면서도 다른 이를 사랑합니다.
끝없이 슬픔을 양식 삼고, 흐느끼고, 웃고,
죽음과 삶 모두 똑같이 마뜩치 않으니,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그대여, 그대를 위해서입니다.
Jeajoon Ryu, Valse per pianoforte
Commissioned by Hai-Kyung Suh
Dedicated to Hai-Kyung Suh